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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IKIPEDIA, 중국 당대 화가 이소도( , Zhaodao Li) 作, 용주경도( 龍舟競渡)> 

 

드래곤보트는  BC299년 즉 2300여년 전 중국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전국 7웅(진·초·제·조·위·한·연)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그 중 요즘의 G2라 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 있었으니 바로 서북의 진나라와 동남의 초나라 입니다. 그러나 초나라는 회왕(재위 기원전 329~기원전 299) 시대에 급격하게 몰락하였는데, 굴원과 같은 충신을 멀리하고, 간신을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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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 전국 7웅, 출처:Encyber.com>

 

 당시 굴원(정치가 및 애국시인)은 회왕의 좌도(左徒)로서 안으로는 군주와 정사를 논하고, 밖으로는 외교문서의 초안을 잡고 다른 나라 제후들을 상대하는 막중한 자리를 맡고 있었습니다. 여기 굴원이라는 분이 용선, 즉 드래곤보트의 기원이 되는 중요한 분이 되시는데,  당시 어리석은 회왕은 간신 근상의 참소로 굴원을 쫓아 냈고, 이런 기회를 틈타, 진나라의 재상 장의는 세치의 혀로 회왕을 농락하여 초나라의 우방인 제나라와의 국교를 끊게 만듭니다. 

“제나라와 국교를 끊으면 600리 땅을 주겠다”는 장의의 약속에 속은 것 입니다. 장의는 초가 제와의 국교를 끊자. “언제 600리를 준다고 했냐. 6리를 준다고 했을 뿐”이라며 초나라의 회왕을 조롱하였습니다. 

 

 이후 진나라의 소양왕은 초나라의 회왕에게 초대서신를 보내는데, 서신을 받은 회왕은 안 가자니 노할까 두렵고, 가자니 속을까 두려워 하고 있을 때 굴원은 진나라 방문을 반대하였으나, 회왕의 아들 자란의 의견을 받아들여 소양왕의 초대에 응하게 됩니다. 결국 회왕은 소양왕의 초나라의 땅을 떼어달라는 계략에 억류를 당하게 되고, 나중에는 땅을 떼어주면 풀어주겠다는 협박은 받다 진나라 땅에서 객사를 하게 됩니다.

 


 

<굴원, 중국 전국시대 재상/애국시인, 출처: 중국연대인물 초상화(네이버)>

 

 굴원은 망국의 위기에 빠진 조국 초나라를 절망과 좌절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가에 이르는 그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중얼거리며 물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한 어부가 안색이 초췌하고 야윈 그를 보고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라고 묻는 그에게, 굴원은 회사(懷沙)라는 시를 짓고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음을 맞이 합니다.(멱라수: 호남성 북쪽의 동정호에 흘러 들어가는 상수를 일컽음)

 

 이를 안타깝게 여긴 초나라 사람들은 떡과 계란을 강으로 던져 물고기를 유혹하고, 웅황주를 강에 부어 물짐승으로 하여금 취하게 만들어 굴원의 시신은 훼손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노를 이용하여 수면을 두드리기도 하고, 북을 쳐서 물고기가 굴원의 시신에 다가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굴원의 시신은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대나무통에 밥을 넣어 강물에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이 후, 굴원이 투신한 음력 5월 5일은 중국의 단오절로 전승되었으며, 노를 저어 배를 타는 것이 드래곤보트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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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와 허황후 영정, 출처: www.garakkim.net>

 

 우리나라의 경우 약 2000년 전에도 노젓기 풍습이 있습니다. <삼국유사>가락국기를 보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가야 수로왕(재위 42~199)이 나옵니다. 수로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국제결혼 1호를 상징하시는 분입니다. 그는 인도 야유타국에서 온 부인 허황후를 맞이하기 위해 노를 저어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게되는 데, 처음에는 왕이 신하들을 보내 모셔오라 명하였으나, 부인은 ‘내가 그대들이 누군지 알고 따라가겠느냐?’라고 거절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수로왕은 직접 그녀에게 가서 청혼을 하였고,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이름은 허황옥이며 야유타국의 공주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두사람은 혼인을 하고 수로왕과 허황옥이 혼인한 날은 가락국의 국경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혼례를 올린 음력 7월 27일은 백성들과 관리, 군인들이 모여 패를 갈라 말달리기와 노젓기 경기를 하였습니다. 이 행사는 수로왕이 허황후를 처음 만나는 과정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서, 즉, 앞다투어 배로 노를 저어가는 것 경기 자체가 두분의 만남을 기념하는 연례행사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그 당시 노는 계수나무로 만들어 졌으며, 키의 경우 목연으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1976년 제1회 홍콩 드래곤보트 대회, 출처: www.slideshare.net>

 

드래곤 보트가 굴원을 기리는 수상스포츠로서 현대화 된 것은 1976년입니다. 홍콩관광협회가 제1회 홍콩 드래곤 보트대회를 개최한 후 대회를 정례화 하였으며, 홍콩을 주축으로 한 세계 각국들이 이에 호응하여 각국의 협회가 결성되어 국제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각국의 협회들은 드래곤보트 대회를 개최함으로서 자국 국민의 화합과 체력향상을 도모하였으며, 이를 통해 드래곤보트의 활성화와 대중화가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대한드래곤보트협회(KDBA)가 1999년 설립, 2000년 국제드래곤보트협회(IDBF) 가입 후 공인협회로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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